라이프스타일

Special 3

가까워서 더 힘든 사이, 가족 소통의 기술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라

영어 속담에 ‘Familiarity Breeds Contempt’라는 말이 있다. ‘익숙해지면 얕본다, 친해지면 무례해지기 쉽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사랑도 치유가 필요하다>, <화의 심리학> 등을 쓴 미국의 심리 상담가 비벌리 엔젤은 “어린 시절 부모의 따뜻한 포용과 말 한마디는 상처 난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해준다”고 했을 정도다. 반면 같은 맥락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는 ‘마음속 감정의 방아쇠’가 되어 화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고. 언어학자 데보라 태넌 또한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족 간 대화가 삶에 영향을 끼쳐 강렬하게 반응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고 세상이 괜찮은 곳이라는 아주 중대한 인식을 확립하게 하는 첫 번째 사회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TV나 라디오 등이 시대와 상관없이 가족 간의 갈등이나 상처 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소재로 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며, 사례는 달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사연은 대부분 ‘대화 부재’가 원인이다.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전하지 못해 입을 닫은 것이 함께 살면서도 서울에서 시베리아쯤 되는 마음의 거리를 만들어낸 것. 그래서 1년간 SNS로만 대화했다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낸다는 부모 자식의 이야기나 결혼 후 10년간 대화를 하지 못했다는 부부 이야기 등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들의 경우는 갈등이 극대화된 경우고, 화해할 수 있는 기한을 넘겨버렸기 때문이지만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 집은, 당신네 집은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인 경우다. 그 외에는 아마 그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가장 내밀한 관계이자, 그 관계에서의 경험이 대내적 성격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중요한 존재다. 더 큰 문제는 갈등을 끄집어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가족이라는 견고한 성은 그것이 좋건 싫건 간에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인지라 가족의 허물이 곧 나의 허물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둡고 깜깜한 미로의 성안에 문제점을 숨겨두고 잘 끄집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이 성의 어두움을 증폭시킬 뿐이다. 문을 열어 밝은 햇빛과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문을 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화하는 것이다.

PART 1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억지로 사는 것 아니잖아요, 부부 사이

집을 짓는다고 치자. 부부 사이는 그 집의 대들보와 같다. 대들보가 튼튼해야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비벌리 엔젤은 저서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를 통해 부모 개개인의 치유에 주목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썼지만 줄곧 실패했다면, 원인은 아이나 외부 요인이 아니라 부모의 내면에 있다는 것.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기보다 ‘행복한’ 부모가 되어야 아이 교육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한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야 한다. 이는 가족 구성원의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가정 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고스란히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전해진다. 숨길 수 없는 것으로 사랑과 기침 등을 꼽지만, 불화 또한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느끼는 행복감도 부모의 만족도와 연계된다.

애증의 모녀 사이

엄마와 딸의 갈등은 만국 공통의 정서일까? 한국 영화 <애자>부터 <조이 럭 클럽>, <코파카바나> 등 이에 대해 다룬 다양한 나라의 작품이 있다. 책 <엄마와 딸>에서는 “사랑하든, 미워하든, 존중하든, 거부하든 엄마는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여성이며, 최초로 관찰하는 역할 모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는 말도 이런 관계를 설명한다. 모녀지간은 오묘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지만 때로는 답 없는 갈등에 고통받는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얼굴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하면 자신이 책망받는다는 생각에 엄마는 어떻게든 자신의 기준에서 아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들은 이 일로 내가 어떤 부모로 비칠지에 대해 민감하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엄마가 주요 양육자고, 실제 아이를 평가할 때 많은 부분을 엄마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성인 자녀를 둔 엄마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책임감을 떨쳐버리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엄마는 늘 아이를 신경 써야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어 그런 노력이 눈에 안 띈다. 엄마의 희생은 늘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니 만약 자녀라면 엄마의 노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엄마 스스로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불만이다. 누구든 자신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외부에 이를 표출하게 마련이다. 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충분하다. “엄마가 무언가 해주기보다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그게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가깝고도 먼 부녀지간

엄마와는 가까워서 생기는 문제가 많지만, 아빠와는 너무 어색해서 문제가 생길 일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도 나름 심각하다. 서로 대화가 없어 쌓인 데이터가 별로 없다. 그렇다 보니 간혹 대화를 해야 하는 자리가 생기면 마음의 부담부터 느낀다. 언어학자 데보라 태넌은 이럴 때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느냐?’라는 상투적 질문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대화를 시작하고, 상대의 친밀감을 자극하는 열쇠이니 남발해도 괜찮다.

PART 2 가족 대화의 기술

가까워도 괜찮지 않아요

<가족 힐링>의 저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큰 서운함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가족 간의 대화는 가족 구성원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종종 가족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족이니까 당연히 지적할 자격은 물론이고 의무까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맞는 생각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구성원의 허물을 모르는 척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아주겠는가. 그래서 잔소리와 훈계, 걱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하지만 허물의 원인이 문제다. 때로는 회사에서 오랜 압박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집에만 오면 축 처져 있는 것일 수 있고, 답답함을 해소할 방법을 몰라 모난 돌처럼 온 식구와 부딪치는 중일 수도 있다. 때로는 상대방의 자신감을 채워주는 아주 단순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도

때로 ‘그만한 일에 뭘 발끈하느냐’라는 지적을 가족끼리 많이 한다. 일단 상대방이 화를 냈다면 왜 화를 냈는지 먼저 생각해야지 자신의 기준에서 이를 판단하면 안 된다. 이런 판단법은 어떤 관계건 가까워지는 것을 막고 인간관계를 영원한 미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단순히 입 밖으로 나온 말의 의미, 메시지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언이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하는 ‘메타 메시지’에 더 강렬히 반응한다. 단순히 단어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하기 위해 상대방이 그간 나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 현재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보게 된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어떤 주제에 대해 유난을 떤다 싶으면 혹여 자신이 이전에 반복적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주지 않았나 생각해보자. 높은 강도의 반복적인 염려는 걱정을 가장한 질타일 수 있다. 자신은 몰라도 상대방은 그 질타를 꾹꾹 참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가족 간 대화는 일반적으로 밖(사회 또는 학교 등)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어땠는지를 이야기한다. 대부분 웃고 넘기자는 유머지만 진지한 고충이 오가기도 한다. 고충의 대화 목적도 반드시 답을 찾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적 탐구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결속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상대방이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하자. 이렇게 포문을 열고 심화 단계로 들어가면 된다. 사소한 모든 것이 대화를 위한 정보다. 이를 잘 활용하자. 물론 상대 역시 그렇다, 아니다 정도로 답하거나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DITOR 유나리 PHOTO SHUTTERSTOCK REFERENCE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데보라 태넌 지음, 예담), <가족의 두 얼굴>(최광현 지음, 부키),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비벌리 엔젤 지음, 책으로여는세상), <엄마와 딸>(폴린 페리 지음, 큰나), <가족 힐링>(버지니아 사티어 지음, 푸른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