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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Scene

하동에서, 숨 고르는 시간


하동에서 배운 느림의 미학

물과 바람, 햇살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하동. 눈부시게 아름다운 섬진강의 은빛 모래밭과 언제나 변함없는 평사리 들판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자연이 주는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머금은 차나무가 산기슭에서 흐드러지게 자라고,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천천히 쉬어 가도 좋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일상의 속도를 줄이고 좀 더 느슨해져도 좋은 계절.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에 지쳤다면 지리산 줄기가 시원하게 내리뻗은 하동으로 향하자.


그 푸르른 경치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악양은 느리게 살기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슬로시티(Slow City)’다. 마을엔 비닐하우스가 없고, 일부러 예쁘게 보이기 위해 단장하지 않아도 수수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산기슭에 자리한 야생 차밭은 1,300년이 넘게 하동을 지키고 있고, 하동 사람들은 차나무에 해마다 헌다례를 지내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인공 비료도 더하지 않고 일부러 가꾸지 않은 야생 차밭은 그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하동의 명소인 평사리 들판은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로 널리 알려진 곳. 4월에는 바람결 따라 흩날리는 청보리밭을, 10월에는 금빛이 넘실대는 황금 들녘을 선사한다. 차와 문학, 시골의 낭만을 느끼고 싶다면 하동으로 느린 여행을 떠나보자. 여유와 풍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2 우리나라 최고 수령의 차나무가 자생하는 ‘도심 다원’. 산을 에둘러 펼쳐진 차밭은 그야말로 야생 차밭의 진수를 보여준다. 3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인 되었던 평사리 들판. 그 위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최참판 댁에서는 드넓은 평사리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차밭을 보며 걷는 길

자연 그대로의 싱그러움을 간직한 5월의 녹차밭. 하동의 녹차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시조다. 지역의 특산물로 왕에게 진상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 사신 대렴이 차나무의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의 남녘인 화개동천에 처음 심었다. 현재는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주변이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질을 갖추어 녹차 재배지로 유명하다. 하동군의 녹차밭을 거닐다 보면 보성의 밭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보성 녹차밭이 잘 정리된 정갈한 느낌이라면 하동 녹차밭은 덜 손질된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고 있다.

하동 녹차가 ‘야생차’로 불리는 이유다. 또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법이 정착되어 있어 믿을 만하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덖음 기술로 녹차의 떫은맛을 제거해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다. 특히 하동 악양은 집집마다 차밭을 가지고 있어 각각 ‘우리 집만의 차 맛’을 자랑한다. 천천히 차밭을 둘러보고 싶다면 하동군의 둘레길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총 6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하동의 산길은 대부분 옛길이라 외지고 가파르다. 그중 원부춘-가탄 구간은 지리산 둘레길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지만 화개 명물인 차밭을 마주할 수 있으며, 지리산 능선과 계곡이 함께 어우러진 선경을 감상할 수 있어 하동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1 구례에서 하동포구로 흐르는 섬진강에서 재첩을 채취하고 있는 사람들. 2 하동을 찾았다면 맑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재첩국을 꼭 맛봐야 한다. 3 녹차는 어린잎일수록 타닌이 적고 아미노산 성분이 많아 감칠맛이 나고 맛있다. 4 천년 차나무로 유명한 도심다원의 차밭.

재첩으로 차린 섬진강 밥상

하동의 명물 먹거리는 청정 수질을 자랑하는 섬진강에서 난 식자재로 만든 음식이다. 초록빛을 띠기 시작하는 초여름의 섬진강에는 1년 중 가장 많은 먹거리가 차고 넘친다.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에서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모두 잡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무렵 섬진강의 별미로 재첩을 빼놓을 수 없다. 재첩은 칼슘과 인, 철, 비타민 B2·B12,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또 타우린 성분도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 저하에 효과적이며 간의 해독 작용에도 좋다. 하지만 재첩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손톱만큼 작은 조개를 잡아 일일이 껍데기를 벌리고 살을 발라내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고된 과정을 감수하면서 먹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 해장과 원기 회복에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하동 사람들은 이맘때 새로 돋는 방아잎과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지지는 재첩전, 새콤한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재첩회무침을 즐기기도 한다.

하동에서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감 중의 으뜸, 대봉감이다. ‘과실 중의 으뜸은 감이요, 감 중의 으뜸은 대봉감’이라 할 정도로 색깔과 모양이 아름답고 감칠맛이 난다. 하동은 3면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바람의 피해가 적고, 겨울이 따뜻해서 품질이 우수한 대봉감 산지로 적격이다. 매년 10월 말이면 평사리공원에서는 대봉감 축제가 열리며 감 따기, 곶감 만들기 등의 다양한 체험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TIP 하동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 슬로시티 토지길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봄철 여행지다. 하동 땅에 봄바람이 일렁이면 산 따라 강 따라 벚꽃과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날이 좋아 자연스럽게 산책 생각이 난다면 두 발로 하동 땅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슬로시티 토지길’로 발길을 옮겨보자.

슬로시티 토지길은 총 3개 코스로 하동 악양면 평사리와 화개면 그리고 섬진강 변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슬로시티 토지길은 소설 <토지>의 배경인 악양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1코스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오르는 2코스, 섬진강과 18번 국도를 따라 남도대교로 이어지는 3코스로 나뉜다.

각 코스별 소요 시간은 4~5시간으로, 1코스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다만 모든 코스에 그늘이 없어 모자를 꼭 착용하는 것이 좋다.





EDITOR 나미루 PHOTO JTBC PLUS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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